갈색PET병에 담긴 대용량 맥주가 작년 연말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재활용업체는 갈색PET병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는 지난해 11월 “맥주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자외선 차단과 공기 투과를 막을 수 있는” 1.6리터 갈색PET병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본 제품은 맥주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며 어림잡아 1,000만병이 팔려 같은 수의 PET병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갈색PET병을 재활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있다. 기존 PET병의 경우 재활용 체계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구축돼 회수 전량을 재활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활용업체는 갈색 PET병 처리가 힘들다.

기존 PET병의 80%에 해당하는 흰색(투명)과 녹색(그린) 처리설비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색PET병은 3중겹으로 중간에 나일론까지 섞여 있어 PET와 나일론의 분해가 거의 불가능하다. PET병 표면 라벨은 아교를 사용해 붙였다.

재생업체들은 “물에 불려도 라벨을 떼어내기 힘들다”며 “순도 높은 재생처리가 어렵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한국PET병재활용협회 이현철 차장은 “재활용업체들은 수요처를 찾지 못해 PET병을 압축해 마당에 쌓여 놓기만 하고 있다”며 “생산업체가 처리 비용을 보존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활용업체들은 “갈색PET병이 10%이상 차지할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생산업체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소각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환경단체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이하 쓰시협)관계자는 “갈색PET병이 재활용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복합재질로 분류해 에너지용 연료로 처리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라며 “분리수거를 통한 재활용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ㅅ재활용업체는 “갈색PET병은 재생처리하지 않고 곧바로 에너지용 연료를 만드는 복합재질 원료로 재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플라스틱 리사이클링 협회 관계자는 “최근 갈색PET병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갈색PET병을 처리하면 원가에도 못 미치는 Kg당 178원을 받지만 복합재질 원료로 판매하면 Kg당 200원씩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부랴부랴 사태 해결에 나섰다. 환경부는 “맥주업체가 갈색PET병 선별작업과 신규 처리라인 설비, 수요 개발 등 재생처리에 필요한 비용으로 현재 Kg당 178원의 분담금을 300원대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논의하고 있으며 곧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2의 갈색PET병 출현을 막을 방법 없어

인천 매립지 인근에서 재활용업체를 운영하는 ㅇ사장은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이익만 쫓는 대기업들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하고 돈만 부담시키면 해결된다는 환경부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문제”라며 “제2의 갈색PET병은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각 기업이 반환경적인 제품 및 포장재를 쏟아내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의 모든 PET병에 붙은 라벨은 대부분 PVC로 제작돼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라벨을 붙인 접착제 재질도 재생처리 순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이밖에 계란 포장용 플라스틱이나 유색 스티로폼 등도 재활용 처리가 힘든 재질 중 하나다.

환경부도 새로운 포장재 재질의 출현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자원재활용과 신진수 서기관은 “개발단계에서 위생이나 안전성 등은 산업자원부에서 검증을 받도록 규정돼 있으나 환경영향이나 재활용 여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기 때문에 사전 대비는 어렵다”며 “환경부는 유색 PET병에 대한 재활용 기준비용 인상 등을 통해 투명 PET용기의 사용을 유도해 나가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PR제도 보완해야

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도입했다. EPR제도란 생산자에게 제품이나 포장재의 폐기물에 대해 일정량의 재활용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과거 폐기물의 양에 관계없이 재처리된 양만큼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식에서 생산된 폐기물에 비례해 재처리 책임량을 의무 부여한다는 점에서 좀 더 강화된 정책으로 평가 받는다.

2004년에는 라면봉지, 빵봉지와 같은 필름류 포장재 분리 배출이 시작됐다. 환경부는 “2004년 1월 실적이 2,000톤이 넘었다”며 “올 2만톤 목표를 넘을 것”이라 예상했다. 자원재생공사 EPR관리팀 김애선 팀장은 “2003년 실적은 올3월말까지 접수받아 결산하므로 정확한 수치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EPR제도 도입으로 대략 15% 재활용률이 증가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분리 수거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 필름류 분리 배출은 홍보에 더 힘쓰고 재생처리 체제구축에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이라 분석했다.

좋은 효과를 보고 있는 EPR제도도 보완할 점이 있다. 이번 갈색PET병 파동은 EPR제도의 헛점을 교묘히 이용했다는 지적이다. 현재 EPR제도는 전전년도의 출고량에 대해 재활용의무를 부과하므로 생산자들은 2003년 출고량에 대해 2005년에 재활용의무를 지게 되고, 올해에 출고되는 물량은 2006년에 재활용의무를 지게 된다. 따라서 맥주업체들은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갈색PET병 처리 비용을 부담할 법적인 책임이 없다.

쓰시협은 “맥주 업계가 환경부와 재활용 업체사이를 오가며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갈색PET병 재활용 방안을 제시하고 환경부도 신종 포장폐기물에 대하여 무기력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현행 제도를 조속히 개선하라”고 주장했다.

재활용 업체들도 “EPR제도는 정부가 생산업체와 재활용업체의 문제에서 손을 띄겠다는 발상”이라며 “무책임한 생산업체에 소규모 재활용 업체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어 정부의 지도 감독이 절실하다”고 아쉬워했다.

자원재생공사 김애선 팀장은 “아직 기업의 마인드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EPR제도의 성패는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005년부터 휴대폰, 오디오가 재활용 품목에 포함되는 등 점차 품목이 확대되고 있으며 증가하는 수입품에 대한 규제 및 지도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디어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