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매스컴에서는 연일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난리인데, 정작 이곳 현장에는 일 할 사람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실업자 수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6200여개 중소업체가 모인 경기도 시화.반월공단지역 생활정보지는 사람을 구하는 광고로 터질 지경이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일년씩 구인광고를 고정 게재하는 기업도 많다. 그래도 적당한 사람을 못 구해 한숨만 쉬고 있다. 경기도 시화공단에 위치한 포장재 제조업체 유한산업 원상희 상무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 사람을 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빈자리가 많다"며 "젊은 사람은 며칠 못버티고 도망가기 일쑤여서 아예 35세 이상, 가정을 꾸린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유한산업의 원상희 상무(사진 왼쪽)와 관계자가 취재진에게 산업현장의 인력난을 설명해주고 있다

▲1년 내내 구인광고

반월공단 유레코(포장 및 필름 제조업) 조일행 전무는 "일하겠다는 사람은 계속 오지만 해외영업 지원자는 영어를 못하고, 생산직 지원자는 손에 먼지 묻히기를 싫어하는 식으로 서로간의 차이만 확인할 뿐"이라며 "생산직의 경우 채용해도 오래 버티지 못해 1년 내내 사람을 뽑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유한산업도 새 기계가 들어와 2명의 신규채용을 추진 중이지만 제대로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마냥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이보다 20％가량 급여를 덜 받지만 궂은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한다"며 "돈의 가치를 떠나 땀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 철없어 보일 때도 있어 입맛이 씁쓸하다"고 털어놨다.

▲3일도 못버틴다

반월, 시화공단 중소기업 근무자의 평균 첫 연봉은 1800만원선. 10년쯤 근무하면 3000만~4000만원선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무제품을 생산하는 천지화학은 계속되는 구인난으로 상시 채용제도를 도입했다. 일손이 항상 3~4명 부족한 상황에서 이직자마저 속출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채용담당 박희석 대리는 "어렵게 인력을 보충해도 하루 이틀 일하고 도망가듯 회사에 나오지 않기 다반사"라며 "일을 배우기도 전에 ´높은 임금´과 ´좋은 근무조건´만 기대하는 구직자가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시화지사 관계자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일부 젊은 세대는 땀흘려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특히 여성 구직자의 경우 제조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식당, 카페, 술집, 노래방 등 서비스 업종에만 편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화공단 일대 기업인들은 "정부의 실업대책이 새 일자리 창출 못지 않게 ´노동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는 방향으로 추진되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구입한 새기계."새 기계를 구입했는데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한상황"이라고 말했다

▲왜?

반월.시화공단 채용관계자들은 구인기업과 구직자의 ´눈높이 차이´가 학력 인플레이션에서 비롯됐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높은 학벌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사라질 줄 모르는 관리직 선호현상이 결합, 생산직 공동화현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의식과 ´대학까지 나왔는데´라는 기대심리가 인력시장 불균형의 주범이라는 것.

한국산업단지공단 경영지원과 관계자는 "생산직은 실무를 익힌 고졸 기술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실업계 고졸자까지 앞다퉈 대학에 진학하며 사람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일단 대학까지 나오면 임금이 많고 적은 것을 떠나 생산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도 중소기업청 안영창 경영지원과장은 "중활(중소기업 체험활동) 등 독자적인 대학생 대상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지만 양측의 시각차로 채용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회적 풍토가 먼저 조성되어야 인력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중소기업은 비전이 없다?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중앙회 등 관련 기관에 따르면 현재 부족한 일손은 전국적으로 약 40만명으로 추산된다. 중기청 관계자는 "중기청이 최고경영자 간담회 등을 통해 파악한 부족 인력만도 14만명"이라며 "이는 정상기업활동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을 만큼 많은 숫자"라고 말했다.

구직자들이 중소기업 근무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임금´과 ´미래가 없다´는 것.

힘이 들어도 참고 견딜 마땅한 ´당근´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반면 중소기업은 특성상 대기업보다 더 큰 기회의 땅이라는게 실제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반월과 시화공단에서 만난 Y업체 J사장은 생산직으로 입사, 관리직을 거쳐 관련 업종으로 창업해 7년 만에 매출 50억원의 기업을 일궜다. N업체 K부사장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입사, 오너인 사장과 함께 회사를 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키우며 입사 10여년 만에 억대 연봉을 받는 관리자가 됐다.

또한 근무연수가 5년을 넘기면 ´가족´ 같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는 점도 중소기업의 장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