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용 회장

병술년(丙戌年) 새해벽두부터 이미 해묵은 과제가 되어버린 「포장대표단체 설립 문제」를 논하는 자체가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며, 또한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립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필자의 전 직장이었던 디자인진흥원(전 디자인포장센터)의 신년하례식에 다녀오면서 디자인 분야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니 포장분야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한결같은 일념에서다.

회고 하건데, 현재의 디자인진흥원은 1970년도에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일환으로 디자인과 포장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정부에서는 한국포장기술협회, 한국수출디자인센터, 한국수출품포장센터를 합병하여 발족시킨 한국디자인포장센터를 모체로 하고 있다.

산업계에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그 당시 한국디자인포장센터는 산업디자인 분야와 포장분야를 양대 축으로 하여 디자인 및 포장개발과 진흥정책 추진을 전담하면서 포장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던 것이 1996년 산업디자인진흥법 개정에서 포장분야가 제외됨으로서 동 센터는 한국디자인진흥원으로 개편되고 조직에서도 포장분야가 없어져 포장개발 및 진흥사업은 계속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어떠한 변화를 가져 왔는가. 양대 축이었던 산업디자인 분야 쪽은 비록 한국디자인포장센터의 자산을 물려받았다고 하지만 국고(1,000여억원)지원으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디자인센터 건물을 지어 새롭게 디자인진흥원으로 개설하였고, 정부의 관심하에 수백억원의 정부예산을 운용하며 일사불란하게 디자인 관련사업을 수행하면서 디자인분야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고 있다.

이와 반면해 포장분야는 어떤가. 한국디자인진흥원 조직에서 포장분야가 제외됨에 따라 포장사업은 떨어져 나오게 되었고, 그 대책으로 그동안 해오던 포장관련 진흥사업을 일부 민간 포장단체에서 이양 받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포장단체간에 임시방편적인 정책난무와 정책사업 분산수행으로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마련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정부지원(연간 10억원)을 받고 있던 포장기술개발사업 마저 2005년도에 주관하던 민간 포장단체의 관리부실과 관계자들의 사업비 유용이 발생하면서 그나마 지원받던 예산도 5억원으로 줄고 관리기관도 포장과 무관한 디자인진흥원으로 일원화 하는 등 사업의 존폐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장산업계에서는 위기라는 말까지 들려온다. 즉, 포장재 업체에서는 원재료비는 높아 가는데 제품가는 올리지 못하여 손해를 볼 정도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며, 더군다나 가격면에서 유리한 중국산이나 동남아산 포장재를 찾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원인은 급속도로 세분화·전문화 되고 있는 포장산업에 대한 사전 대응책이 없었기 때문이며, 그로인한 기술수준 정체와 포장기계 및 설비의 수입의존이 심화되고 있으며, 원가상승 등으로 국제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또한, 과포화 상태인 내수시장에서의 출혈경쟁에도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포장분야의 위기는 과연 어디서 왔을까? 정부의 지원정책의 부재에서 온 것인지, 또는 민간단체의 관리부실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포장개발·진흥지원 체계에 문제가 있는지 이 시점에서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원인은 정부의 포장정책 부재 등 외부적인 문제가 무엇보다 크다고 볼 수 있지만 정부의 정책부재를 초래하게 만든 내부적인 문제에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포장산업계에서는 산업디자인진흥법 개정당시 정부차원에서 포장분야를 버렸다고 하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피해의식이 자괴감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그러나 힘은 모두가 위기의식을 갖고 참여함으로서 나오는 것인데 우리 스스로 힘없음을 핑계로 방관하고 있지는 않았나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포장산업계의 위기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조하건데 원래 포장산업기술은 크게 포장재료 제조 및 가공기술과 포장설계기술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포장재료 제조 및 가공기술은 다양한 업종, 즉 제지, 합성수지, 유리, 금속, 목재산업 등 제조업에 산재되어 있다.

생산된 포장재료 및 용기를 각 제품의 특성에 맞게 제품에 적용하여 보호성, 편리성, 판매촉진성을 부여하는 포장설계기술은 포장재료업체도 일부 보유하고 있으나, 오히려 포장재 사용업체(포장을 필요로 하는 각종 제품 생산업체), 패키징기술 또는 디자인 전문회사, 포장기술 설계 용역업체 등이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또한 포장의 자동화 시스템기술은 포장기계업체나 포장기술 벤처기업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포장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각 분야에 산재되어있는 핵심기술을 통합 기획하고 체계적으로 관리, 진흥하여야만 포장기술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포장기술발전분야를 체계적으로 지원, 관리, 진흥하는, 어느 분야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대표기관 설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2000년 즈음에도 포장대표기관 설립에 대한 포장단체간의 논의들이 있었지만 결국 재정문제 등이 걸림돌이 되어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또한 지난해에도 포장분야 대표단체 설립에 대한 논의가 몇 차례 있었으나 아직 실질적인 결성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유야무야되고 있는 포장대표단체(가칭 포장단체총연합회) 설립을 다시한번 호소한다. 이 말이 독백으로 허공에 메아리쳐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포장산업계 원로들과 관계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누어 주실 것을 당부 드리며, 새롭게 발족한 포장대표기관이 과거 디자인포장센터(현 디자인진흥원)에서 수행했던 포장정책수립과 관련사업을 함께 수행함으로서 국내 포장산업의 발전을 위한 도약의 기회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