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훈 소장

미국과 FTA가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최근 영화계에서는 한동안 잠잠하던 스크린쿼터 축소문제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기스타의 일인 시위에 수천 명의 팬들이 모여 시위 자체가 무산되는 해프닝이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할리우드 영화가 물밀듯이 몰려올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영화계는 몸서리가 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영화계도 이젠 그리 만만하지 않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왕의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한국영화는 이미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고 있으며, 시장 진입 규제를 풀어도 이러한 추세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인들의 밥그릇 지키기 노력은 무서울 정도이다. 스크린 쿼터를 지키려는 노력과 더불어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하여 좋은 작품을 만들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을 비난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영화인들은 더욱 똘똘 뭉쳐 현안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 패키징 산업을 판가름해 볼 기초자료의 부재

시작부터 우리와 별 관계가 없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들먹이는 이유는, 이들의 파문을 지켜보며 우리 패키징 산업의 경쟁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과연 외세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특히 최근에 정확한 양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들어오고 있는 중국산 포장재에 대해 우리 것이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까? 국내 영화 점유율처럼 외국산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일정 영역이 과연 구축되어 있는지 등의 의구심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해답을 구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답답함을 해소하려면 우리 패키징 산업의 현 주소를 나타내주는 여러 가지 통계자료가 있어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우리의 패키징 산업을 판가름해 볼 기초적인 데이터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한 산업을 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의 하나로 그 산업을 평가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있어야 한다. 전체 산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이며,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부분이 넘치는지를 알 수 있기 위해서는 통계자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체 산업의 금액적인 산출과 함께 생산량, 소비량, 필요량 등은 그 산업을 파악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패키징산업을 평가할 통계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각 조합 혹은 협회, 패키징 전문매체, 통계청, 세미나 발표 등을 통해 일부의 통계자료들이 가끔 발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자료는 대부분이 너무 광범위하거나 단편적인 내용으로 그치고 있다. 포장관련 조합이나 협회에서도 포장분야만의 정확한 통계자료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최근의 자료가 아닌 과거의 자료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10여년 전의 자료가 가치 있게 인용되는 경우도 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자료가 아닌 최근의 자료가 필요하다.

패키징 산업의 통계자료 필요성은 어느 때 보다 높아

이러한 국내 패키징 산업의 자료 부재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사실 전반적인 패키징 분야의 자료를 산출하는 것은 민간단체에서 담당하기에는 벅찬 부분이 있다. 다양한 포장재료별 단체들이 각각의 부분에 대한 자료들은 일부 산출할 수 있겠지만 이것 또한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관련 단체들이 포장재 이외의 재료들도 함께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포장재만을 따로 분류해서 통계를 내기는 쉽지 않다. 또한 경쟁관계에 있는 단체간의 이해관계는 정보의 교류를 어렵게 하고 있다.

비용문제 또한 걸림돌이 된다. 조사, 집계를 위한 인력을 수급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으며 민간단체에서 여력을 내어 이를 해결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국영기관인 「한국디자인포장센터(KDPC)」에서 매년 「한국포장산업실태조사보고서」를 발간하였지만 KDPC의 해체와 함께 1996년부터는 패키징 산업 전반에 걸친 통계자료가 나오지 않고 있다. 10년간 패키징 분야는 어둠 속에 침잠해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패키징 산업에 대한 통계자료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패키징 산업이 안고 있는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통계자료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저가 포장재의 문제에서부터 국내 업체 간의 과당경쟁, 대외적인 패키징의 홍보에 이르기까지 산재해 있는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내고, 부가가치 있는 기술개발과 산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통계자료가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점차 빈번해지는 해외로부터의 질의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일본포장기술협회(JPI)를 통해 매년 전체적인 패키징 산업 통계자료가 나오고 있다. 큰 범위뿐만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의 자료가 제시가 되는데 이를 참고하는 입장에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향후 우리도 본격적인 패키징 통계자료 작성이 시작될 경우 오래전부터 이러한 작업을 해온 JPI의 노하우부터 벤치마킹하여야 할 것이다.

일본의 패키징 산업을 대표하는 JPI의 활동을 보면서 국내에서도 이러한 기초자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대표단체가 만들어져야 할 필요성이 높다. 여기에 국가적인 지원도 있어야 할 것이다.

포장기술사회의 포장실태조사는 상당한 의미 지녀

다양한 산업군들이 연계되어 있는 패키징 산업을 지원하게 되면 타 산업군으로의 그 파급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또한 패키징은 현대인의 일상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의 삶을 위한 의식주가 모두 생산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패키징을 필요로 한다.

더 나아가 패키징은 자원의 순환을 효율적으로 적용 할 수 있는 분야로 또한 생활문화의 한 부분으로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더 이상 뒤쳐질 수 없는 패키징 산업을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방치시키면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은 후퇴할 것이며 해외 기술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최근 한국포장기술사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End User 업체에 대한 포장실태조사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전수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기전자, 제과, 제약, 식음료, 생활용품/화장품, 섬유/신발/완구 등 6개 품목군으로 구분하고 각 품목군 별로 약 6개 업체씩을 선정하여 한국포장기술사회 소속 전문가들이 직접 표본조사를 하고 있다.

표본조사에 의해 품목군 별로 포장현황을 추정해보고 이를 취합하여 패키징 산업 전체를 추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나가고 있다. 물론 이 방식은 전수조사와는 상당한 오차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는 전문가의 능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일반 제조업체에서의 패키징 분야 동향은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자료조사 결과의 공유를 통해서 업체에는 패키징 분야의 연구개발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이 조사 작업은 현재 포장 현황에 대한 자료 유출을 꺼리는 업체들의 태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패키징 산업에 대한 패키징 백서 발간 필요

한국포장기술사회는 시간과 비용의 측면에서 end user를 조사하는 방법을 택하였지만 패키징 산업의 전반적인 현황을 파악하려면 모든 포장재료 및 포장기기 등의 생산량을 전수 조사하여야 한다. 또한 조사된 내용을 분석하여 전문가의 향후 예측까지 곁들인 이른바, 패키징 백서의 발간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국내 패키징 산업의 발전을 위해 기초자료인 패키징 산업 통계자료를 확보하고 백서를 발간하는 것이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된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내일은 이미 늦기 때문이다.

패키징 산업 통계자료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패키징 산업계의 대표단체 설립과 정부 당국과 관심있는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포장인들도 이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고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패키징 산업의 통계자료를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포장인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