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수 소장 DMI(Design Management Institute)

작년에 바뀐 해태 부라보콘 디자인이 산업자원부 굿디자인상과 대한민국 패키지디자인대전에서 팩스타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IDAS KOREA로부터 지난해 12월 ´올해의 디자인 경영인´으로 선정 되었다는 일간지 기사가 났다.

그 해 발표된 가장 우수한 프로젝트에 주는 상으로 중앙일보와 매일경제가 후원하고 삼성이 협찬한 것으로 보아 꽤 권위가 있어 보인다. “전통의 힘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이뤄 나가는 것이 장수 브랜드를 지켜가는 힘”이라는 것이 부라보콘 디자인 혁신(?)의 변이다.

해태제과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수상을 축하해야 할 일임에도 필자의 가슴은 답답하다. 무엇이 전통이고 무엇이 혁신이란 말인가. 부라보가 늙어서 디자인을 바꾸는 혁신이 필요했다면 100살이 넘도록 변신을 하지 않은 코카콜라는 이미 무덤 속에 있어야 한다.

마케팅 환경과 시장 상황이 바뀌어서 디자인을 바꿔야 하는 것이 이유라면 코카콜라는 범세계적인 펩시 찰렌지에 얻어맞을 때마다 그래서 매출이 떨어지고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펩시에 대해 맛의 열등함이 증명될 때마다 용기를 바꾸든가 로고를 바꾸든가 칼라를 바꿔야 했다.

그러나 정 반대로, 유리병이 사라지고 페트병이 나오는 과정에서 곡선의 병이 유통에서 사라진 시간적인 공백이 있을 때마저도 모든 광고와 알루미늄 캔에 곡선의 병모양을 삽입함으로써 소비자 기억 속에서 코카콜라의 시각적인 이미지의 단절을 이어주었다.

브라보콘 디자인의 변화 최초디자인(왼쪽), 바뀌기 전의 디자인(가운데), 최근 바뀐 디자인(오른쪽)

기억의 대부분은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고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의 전통의 힘은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나온다. 스카치테이프(Scotch tape), 셀로판(Cellophane) 라이방(Ray ban), 무스(Mousse), 지퍼(Zipper), 크레파스(Craypas), 호치키스(Hotchkiss) 등은 비주얼이 없음으로써 단순히 상품 카테고리의 대명사로 전락해버렸으나 부라보는 비주얼이 유지됨으로써 최고의 아이스크림 브랜드로 영광을 누려왔다.

1970년 4월 출시된 해태제과 부라보콘은 한국 아이스크림 역사의 시작이며 대명사다. 한 때 빙그레 콘이나 롯데 콘을 사면서도 ‘부라보’ 주세요 했다.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36년간 팔린 33억 개를 길이로 환산해 보면 경부고속도로를 700여 회 왕복하거나 지구를 14바퀴 정도 돌 수 있는 길이인 55만2000㎞에 달한다고 한다.

“기억의 대부분은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고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의 전통의 힘은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나온다. 디자인을 크게 손봐야 할 시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브랜드에 매우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이다.”

디자인을 크게 손봐야 할 시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브랜드에 매우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이다. 그 외에는 품질개선이나 기업이나 마케팅환경변화 등의 경우에 디자인을 조금씩 바꿔 주어야 한다. 이 때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디자인은 칼라, 재료의 질감, 용기의 형태, 로고, 그래픽, 패턴 그리고 그것들의 조합이 이루어 내는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의 이미지를 끌고 나가 새로운 디자인과 이어주는 그 비주얼 요소가 드라이버다. Close-in이라고도 한다. 켈로그의 수탉, 하인즈의 비석모양, 말보로의 삼각형, 프링글스의 튜브, 토블러론의 삼각 바가 드라이버에 해당된다. 그리고 코카콜라의 로고와 병모양, KitKat의 칼라와 로고, 스니커스의 로고와 칼라 그리고 베게모양 등은 한 패키지에 둘 이상의 드라이버가 결합되어 있다.

100여 년을 지속적인 Close-in으로 각각의 FMCG 카테고리 안에서 확실하게 포지쇼닝 하고 있는 브랜드들.

비주얼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패키지디자인은 이미지의 명료성이 상승작용을 한다. 결합은 합의 개념이 아니라 승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코닥의 노랑색 바탕과 로고 K가 각각 10이라면 결합된 전체는 100이 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시각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진 브랜드 인지도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친근성, 품질신뢰성, 구매고려 대상군, 선호도, 고품질, 일관성, 우월성, 높은 시장점유율 등으로 나타난다.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끊임없는 노출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이미지화 되어 소비자가 브랜드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됨으로써 상품의 가치 즉 브랜드 자산이 증대된다.

부라보콘의 콘은 일반적인 형태요소이긴 하지만 하트들의 패턴과 결합되어 소비자에게 기억되고 있는 디자인이다. 불과 4~5도의 콘의 각도가 소비자가 양과 크기 그리고 이미지 변화를 감지하는 예민한 형태요소가 된다. 해태는 일반적인 비주얼 요소인 콘의 각도나 재료의 질감에서 변화를 주고 드라이버인 하트패턴은 변함없이 끌고 나갔어야 했다.

코카콜라 브랜드 자산이 40조원을 넘는다. 패키지디자인 요소를 빼고 브랜드인지도를 말할 수 없고 브랜드 인지도를 빼고 브랜드 자산을 말할 수 없다.

해태는 브랜드 자산을 스스로 버린 셈이다. 심사위원들이나 해태의 의사결정권자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혹시 브랜드를 정의 하는데 상품이름에 비중을 둔건 아닌지. AMA(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의 브랜드에 대한 정의는 ‘판매자가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인식시키고 다른 경쟁자의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네임, 용어, 사인(Sign), 심볼(Symbol), 디자인 혹은 이들의 결합체’이다.

마케팅교과서 Kotler도 ‘브랜드는 판매자 또는 판매자 집단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경쟁자들의 브랜드와 차별화 시킬 의도로 만들어진 이름, 용어, 기호, 심볼이나 디자인 또는 이것들의 결합체’라고 정의 했다. 이처럼 이름과 용어 외에는 모두 시각적인 것들로 구성되는 것이 브랜드다. FMCG브랜드는 시각적인 이미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시각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진 브랜드 인지도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친근성, 품질신뢰성, 구매고려 대상군, 선호도, 고품질, 일관성, 우월성, 높은 시장점유율 등으로 나타난다.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끊임없는 노출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이미지화 되어 소비자가 브랜드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됨으로써 상품의 가치 즉 브랜드 자산이 증대된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를 기의(의미)와 기표(소리)로 파악하고 이 둘의 관계를 종이의 앞 뒷면처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호종속개념으로 파악하였다. 우리가 소를 소라고 불러야 할 아무런 필연성이 처음에는 없었다. 소를 말이라고 했어도 상관은 없었다는 말이다. 다만 뿔 달린 덩치 큰 짐승을 소라고 하자 하는 약속이 있었다.

코카콜라의 병모양이나 로고는 ‘코카콜라’라는 이름과 상호 종속되어 뗄래야 떼어낼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부호화 되었다는 말이다. 한 집안 3대에 걸치는 36년이나 된 브랜드라면 같은 맥락에서 문제를 보았어야 했을 것이다.

혹시 조사와 배경 그리고 과정 없이 디자인 자체만 가지고 수상을 결정한 건 아닐까. 그렇다고 하드라도 미적인 기준에서 기존 디자인이 세계 어느 아이스크림콘에 비하여도 떨어지지 않고 패턴화 된 하트의 핵심 드라이버요소를 가지고 있다.

반면, 새로운 디자인은 감각적이고 세련되긴 했어도 뚜렷한 드라이버가 될 만한 요소가 없다. 이런 디자인은 시간이 흘러도 소비자가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미지의 상대적인 차별화를 통한 포지쇼닝이 어려워진다. 포지쇼닝이 안되면 브랜드로 발전하기 어렵다. 뚜렷한 드라이버가 없으면 브랜드 확장을 위한 디자인도 어려워진다.

혹시 새로운 디자인 자체가 구매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고관여 상품과 혼동한 것은 아닐까. 마스터브랜드, 개별브랜드, 보중브랜드 등 브랜드 관계스팩트럼을 분명히 하는 내구재나 전자제품, 휴대전화 등은 부라보콘과 같은 저관여 FMCG와는 다르다.

FMCG는 해태든 롯데든 기업 브랜드가 의미가 크게 없고 기술력에도 차이가 없으며 개별 브랜드로서 상품의 시각적 이미지가 상품인지와 구매충성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FMCG는 해태든 롯데든 기업 브랜드가 의미가 크게 없고 기술력에도 차이가 없으며 개별 브랜드로서 상품의 시각적 이미지가 상품인지와 구매충성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얼굴이 바뀐 주인공들은 사회적 관계와 지위, 결국 인생 자체가 뒤바뀐다. 얼굴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기 때문이다. 작년에 프랑스 여성 ‘이자벨 디누아르’는 얼굴을 개가 물어뜯어 세계최초로 뇌사자의안면이식 수술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얼굴이 바뀐 주인공들은 인생 자체가 뒤바뀐다.

여기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식수술 자체의 과학적 성과 보다 정체성이다. 철학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설을 쓴 프라도 교수는 “얼굴은 직접적으로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부위로서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으로 얼굴이식은 기능적 회복뿐 아니라 정체성 재정립에 성공했을 때만이 수술에 대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기능은 아이스크림으로서의 기능으로, 정체성은 부라보콘이라는 브랜드로 바꿔서 생각해 보자. 아이스크림의 기능은 유지 되지만 얼굴이 바뀌어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다. ‘디누아르’는 사람이라는 물리적 기능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인간 ‘디누아르’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자벨 디누아르’라는 커다란 명찰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과도하게 얼굴에 칼을 댄 선풍기 아줌마가 안타까운 것은 커져버린 얼굴보다 잃어버린 정체성이다.

외부정보에 대한 지각(Stimulus-based recognition)은 대상에 대한 정체성 확인(Object identification)이 먼저 되고 추론과정에 의한 이름활성화(Name activation)가 뒤따른다(Paivio, 1976). ‘디누아르’는 또 하나의 ‘디누아르’를 만들며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혹시 새로운 부라보콘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같은 이름의 또 하나의 브랜드일 뿐이다.

Landor는 ‘상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지지만 브랜드는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Meyers and Lubliner, 1998). 브랜드는 회사 것이 아니고 소비자의 것이다(Southgate, 1994). United Biscuit의 Laing은 ‘공장은 무너지고 기계는 낡아서 버려지지만 오직 남는 것은 브랜드’라고 말했다(Pettis(1995).

부라보콘의 과감한 디자인 변경은 단기적이고 국지적인 전투에 모든 총알을 다 쏟아 붓는, ‘전투에서는 이겨도 전쟁에서는 지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까. 공장도 기계도 사람도 사라진 마당에 전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사브레, 맛동산, 에이스 등의 맹장들의 얼굴이 그립다.

이제 기업간 제품을 만드는 기술력의 차이는 없어졌다. 디자인이 경쟁력인 시점에서 디자인 경영인상 제정의 의미는 크다. 7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디자인 매니지먼트를 우리는 디자인 경영으로 해석하고 있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각광 받으면서 기업에서 디자인의 위상이 조직적인 차원에서 승격 되었고 그 중요성이 경영 차원에서 인식되고 있음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고리타분한 경영이론에 디자인자만 붙인 듯이 이론만 있고 실체는 없어 안타깝다.

매니지먼트로서의 디자인은 분야별 특성에 맞춰 Art를 포함한 감성공학, 마케팅, 인지심리학, 뇌과학, 기호학 등이 들어가는 Fusion 학문이 되어야 한다. 각 기업에서 이론과 실무 감각을 갖춘 디자이너, 마케터 그리고 경영자가 키워져야 한다. 경영자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관여 자체가 디자인 경영이 될 수는 없다.

[References]

MEYERS, H. and LUBLINER, M. (1998) The Maketer’s guide to successful package design, NTC Business books. P. 24.
PAIVIO, A. (1976) Imagery in recall, and recognition, In: J. Brown ed., Recall and recognition, New York, Wiley.
PETTIS, C. (1995) TechnoBrands, NY., AMA. P. 6
SOUTHGATE, P. (1994) Total branding by design, London, Kogan Page. P. 19


글 : 김득수 DMI 소장 / deuksookim@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