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 발행인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3년마다 개최되는 인터팩은 가히 세계 최대 최고의 포장전시회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수백 명의 포장인이 패키징의 소재, 기계, 기술, 시스템 등에 관한 보다 나은 정보를 찾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내가 처음 찾았던 9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는 출품자조차 없어 전시장에 태극기도 계양되지 못했는데, 그 후 언제부터인가 태극기가 나부끼고 많은 기업들이 출품하여 세계 속의 포장기업으로 성장하는 발전을 보이고 있다.

개최지 뒤셀도르프는 일 년 내내 세계적 규모의 전시회를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참관자들로 인하여 한국의 단체 참관단들은 전시장으로부터 거의 1시간이상이나 걸리는 지역에 호텔을 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했다는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며 전시장으로 향하는 버스의 차창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넓은 대지와 만발한 유채꽃, 울창한 숲들을 보며 우리와 독일을 생각해본다.

독일은 우리의 1.6배 면적에 인구가 8,200만 명으로, 많은 우여곡절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검은 숲이라는 뜻을 지닌 슈바츠발스는 너무 빽빽하여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이며, 나무만 베어도 80년을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는데도 독일은 물을 아끼고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운동을 하고 있단다.

독일은 유럽의 화려함도, 웅장함도, 뛰어난 예술성도 없어 보이지만, 온화하고 검소하며 정갈한 멋을 지니고 있는 현실적인 국민이다. 독일인은 유럽의 전형적인 개인주의적이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개인주의자로, 공공질서는 대단히 엄격하다. 나라는 부자이지만 개인은 가난하다.

독일은 동·서로,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설명 없이도 통하는 공통적인 정신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지만, 독일은 2번이상이나 세계 평화를 깨뜨린 적이 있다.

독일이 세계 1, 2차 대전의 패배로 인한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도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내고, 동·서 통일도 이루어 냈다. 독일은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하여 이제 행동으로 반성하며 유럽공동국가의 꿈을 이루고저 노력하고 있다. 패전 후의 반성 모습이 왜곡의 일본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다.

우리의 경제적 성공으로 일컫는 「한강의 기적」은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에 비견된다. 우리나라는 5.16 후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과제였다.

그는 외국 차관을 얻기 위해 처음 미국으로 찾아갔으나,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군사 쿠데타 정권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독일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당시 독일의 뤼프케 대통령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나 대통령 전용기 하나 없던 시절이라 황당해할 때 독일의 대통령 전용기를 보내준 호의에 수행원 11명과 함께 독일에 갈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독일에 당도하자 정상회담 전에 탄광으로 찾아가고, 전국에서 모여든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의 만찬 자리에서 이들과 포옹하며, “죄송합니다. 이역만리에서 고생하는 여러분에게 미안합니다. 가난만큼은 2세에게 물려주지 않겠습니다”라며 눈물어린 단호한 즉석연설을 마쳤을 때, 장내는 울음바다가 되었단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너무나 암울했던 가난 때문에 꿈을 펼칠 기회를 찾기 위해 독일로 떠나왔던 그들의 고독함과 외로움, 서러움이 북받치면서 한껏 울었으리라.(후에 독일 수상이 된 동행 장관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감명 받아 1억 5천만 마르크의 경제차관을 승인했다는 후담이 있다.)

불과 45년 전 우리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이곳에 온 한국의 지식인층 출신의 광부와 간호사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어려움과 고독을 참아 견디면서 힘든 일 마다않으며 성실하고, 착실했기 때문에 독일에서의 우리나라 이미지를 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2세들 또한 고급인력으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를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국가 유공자로 인정, 대우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여지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으로 가는 차속에서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의 부모를 둔 중년의 따님 가이드의 과거 이야기에 당시의 광경을 연상하게 되니 나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가난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가를, 오늘의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의 역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과거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의 일로 연결되어 나아가기에 우리는 과거의 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일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고, 발전을 위한 동기를 부여했다. 우리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큰 기여를 했다. 독일의 정신은 철저하고 완벽하다. 여기에 우리의 순발력, 민첩성을 더하면 유럽은 우리에게 큰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