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코크와 참이슬의 닮은 꼴

서울 소주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00%에 육박하던 ‘참이슬’이 2010년 들어 70% 벽이 무너지고, 60% 벽에 들어서지 않을까 싶다. 진로의 추락은 ‘처음처럼’의 비상을 의미한다. 하진홍 진로 사장은 새 참이슬에는 0.1도의 미학(味學)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새 참이슬은 출시에 앞서 5만 명을 대상으로 300여회에 걸친 시제품 테스트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최적의 소주 맛을 찾았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얼마 전에 읽은 책 블링크가 생각나 뒤져본다.

말콤 글래드웰(2006)은 이렇게 쓴다.
“코카콜라의 실수는 펩시에 시장 지분을 빼앗긴 불행을 전부 맛의 탓으로 돌린 데 있습니다. 콜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브랜드 이미지인데 그들이 내린 결정은 제품 자체에 변화를 주는 것에 주력했고, 펩시는 젊은 층에 초점을 맞춰 마이클 잭슨 같은 유명가수를 내세우는 등 브랜드 이미지에 신경을 썼습니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사람들이 단맛이 더 나는 제품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블라인드 테스트가 제품구매를 결정하진 않죠. 왜냐하면 누구도 눈을 감은 채 콜라를 마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는다.
“코카콜라의 문제는 실험실 가운을 걸친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았다는 데 있습니다.”
뉴코크의 ‘뉴’나 참이슬후레쉬의 ‘후레쉬’나 그 말이 그 말이니 이렇게 읽어보자.
“참이슬의 실수는 처음처럼에 시장 지분을 빼앗긴 불행을 전부 제품 맛의 탓으로 돌린 데 있습니다. 소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브랜드 이미지인데, 그들이 내린 결정은 제품 자체에 변화를 주는 것에 주력했고, 처음처럼은 젊은 층에 초점을 맞춰 이효리 같은 유명 가수를 내세우는 등 브랜드 이미지에 신경을 썼습니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사람들이 부드러운 맛이 더 나는 제품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블라인드 테스트가 제품구매를 결정하진 않죠. 왜냐하면 누구도 눈을 감은 채 소주를 마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로의 문제는 실험실 가운을 걸친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았다는 데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실패는 미각의 전이가 코카콜라 패키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몰랐던 것에 있다. 맛의 우위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한 펩시 찰렌지는 패키지가 없는 상태로 한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시끄러웠던 펩시 찰렌지를 돌이켜 보자. 두 개의 잔의 콜라를 각각 마신 다음, 맛이 더 좋은 것을 고르는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사람들은 펩시콜라를 선택했고, 펩시는 이를 대대적인 광고로 이용했다. 놀란 코카콜라는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곧바로 펩시콜라에 가까운 맛을 내는 ‘뉴코크’를 출시했지만 결과는 대 재앙으로 끝난다. ‘뉴코크’는 로고도 바꾼 상태였다. 결국 회사는 1985년 기존의 코카콜라를 ‘Coca-Cola Classic’이라는 이름으로 재 출시하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 것은 반복적인 노출과 관련이 있다(Achenbaum, 1986). 즉 친숙해진다는 것은 비주얼 자체의 문제 보다는 그 비주얼의 경험의 횟수와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정밀한 경두개 자기자극법 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이나 뇌혈류 촬영기술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e)를 이용한 뇌과학은 친숙한 사물이나 사람에게만 반응하는 기억세포를 발견하고, 할머니세포라고 이름 지었다.
뇌과학자 몬테규는 펩시찰렌지와 관련하여 맛이 브랜드 효과에서 나온다는 생각에 몰두하였다. 피험자에게 fMRI 속에 누워 튜브를 통하여 콜라 맛을 보게 한 다음 뇌영상을 촬영하고, 콜라 브랜드를 알려준 후(시각적인 이미지가 있는 사물은 듣고 상상하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뇌의 활동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시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이 때 뚜렷하게 등쪽가쪽(dorsolateral) 전전두엽이 발화되었다. 이곳은 다른 신경계의 실행통제 역할을 맡고 있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이 브랜드에 오염되지 않은 맛의 중추 안쪽안와 전두피질을 제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야코보니, 2008). 심리학자 루이스 체스킨은 ‘감각의 전이(Sensation Transference)’ 현상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를 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품의 포장에서 받은 느낌이나 인상을 제품 자체로 전이시킨다고 했다. 1940년대에 만들어진 ‘감각의 전이’라는 개념이 증명된 것이다.

참이슬의 비극은 뉴코크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뉴코크와 코카콜라는 이름과 로고와 디자인이 달랐다.
결과적으로 코카콜라는 뉴코크를 출시하면서 클라식 코크가 돌아갈 빈자리를 그대로 남겨 두었지만, 참이슬의 경우는 클라식 참이슬과 뉴참이슬 이미지가 이미 섞여버렸다. 참이슬후레쉬는 확장된 이름에 디자인만 다르다. 브랜드 확장인지, 신제품인지, 리뉴얼인지 시간이 갈수록 기존 오리지널 참이슬 이미지가 정체성(BI, brand identity)을 잃고 뿌옇게 희석되어버린다. 그런데 경쟁자 처음처럼과도 이미지가 희석된다. 참 묘한 안개 전략이다. 처음처럼에 대한 미투(me-too)전략이라면 성공으로 볼 수도 있지만, 미투전략은 후발 메이커의 하위브랜드 전략이다. 숭어가 뛰어야 망둥어가 뛰는 것인데, 망둥어가 뛰는데 숭어가 뛰니 뻘밭에서 뒹구는 숭어 이미지가 말이 아니다.

이미지는 사실을 감추고 변질시킨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번갈아 마셔가며 TV를 보는데 청와대 회의실이 어째 옹색하기 짝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경제 워룸(war-room·전시작전상황실) 개념이란다. 이름을 그것의 지시대상과 직접적으로 연결한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이름에서 기호로서의 본질을 놓친다면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의는 상상적인 것이 펼쳐지는 자리이다(바르트, 2007). 누가 봐도 워룸이 아니고 쇼룸이지만, 지하벙커라는 기표는 비상체제라는 기의보다는 폐쇄, 공포, 불안이라는 기의를 만들어 낸다. 콘테이너 명박산성 때문에 태산명동서일필 이미지가 되시더니 이번에는 핵폭탄도 못 뚫는다는 땅 구멍 속에 들어가 계시니 잊힐만한 그 이미지가 다시 중첩된다. 이런 분위기라면 서민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고 하다가도 쏙 집어넣어 버리지는 않을까.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가 삐딱선을 탔다. 아무튼 이미지는 사실을 감추고 변질시킨다.

보드리야르(2006)에 의하면,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실체보다 기호가 더 본질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이다. 이미지는 실재를 변질시켜서 현실보다 더 현실이 된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미사일을 발사한다. 목표물에 맞아 굉음과 함께 폭발하면 그 사실을 실제로 확인할 필요도 없다. 희열을 느끼고자 현장에 갈 필요도 없다. 게임을 전쟁처럼 하고, 전쟁을 게임처럼 한다. 집에서 보는 TV 드라마는 촬영세트장보다 더 현실적이다.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고, 이미지는 그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 TV 드라마 ‘선덕여왕’이 시작하기 전에, 혹은 방영된 후 다음 프로가 시작하기도 전에 선덕여왕과 김유신과 비담이 왕관과 갑옷도 벗지 않고 광고 속에서 낄낄거린다. 그래도 드라마가 시작되면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곧 가상의 실제 속으로 따라 들어간다. 기호는 의미보다 유연해서 거듭 복제되는 이미지는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키다가 기호가 그의 실재를 지배한다.

미국에서는 거대 유통단지가 거대 주거단지에 선행한다. 도시가 생기고 쇼핑센터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쇼핑센터가 생기고 도시들이 주위에 생긴다. 제조회사가 있고, 유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유통이 있고, 제조가 있다. 거대 유통회사가 거대 제조회사를 지배한지 이미 오래다. 인간이 상품을 쇼핑하는 것이 아니고, 상품이 인간을 쇼핑한다.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 저관여 상품) 제조기술이 평준화된 지금은 포장이 제품에 선행하고 있다. 맛으로 마시는 우유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어른이 먹는 쭈쭈바 설레임, 어른 스낵과자 프링글스, 안마시면 위암 걸리는 요거트 윌 등 포장이 상품의 포지쇼닝을 결정한다. 제품에 포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장에 제품을 한다. 참이슬의 참맛은 병에서 나온다.
시뮬라크르(simulacre)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시뮬라크르의 동사로 이미지와 실체가 하나가 되는 단계이다. 먹물로 먹물이 되는 참이슬의 노력이 시뮬라시옹의 세계를 보는 듯, 에셔의 그림 ‘프린트 갤러리’를 보는 듯 하다. 그림을 보는 소년이 그림 속에 갇힌다.

키메라가 되어버린 참이슬

어저께 밤에 마신 소주가 무슨 소주더라? 필름이 끊어진 것도 아닌데 어저께 밤에 마신 소주가 참이슬이던가, 처음처럼이던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밤새 이놈 허리를 잡고 놀았는데. 종업원이 술은 이슬로 하시겠어요? 물었을 때, 아무거나 주세요. 한 것은 생각이 나는데. 아니, 아무거나라니. 사 십년 지기 친구 두꺼비가 어떻게 아무거나가 되었을까. 소주하면 삼학이던 시절부터 나의 진로를 진로로 택한 후, 참나무통 맑은 소주를 거쳐, 참진이슬로, 참이슬 그리고 참이슬후레쉬에 이어서 J까지. 이놈은 이름도 제멋대로 바꾸고, 얼굴도, 성질도, 도수도 제멋대로 바꾼다. 이제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이미지가 거의 유사한 먹물 이미지다. 내가 어저께 마신 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신경은 좌뇌와 우뇌로 서로 반반씩 교차해 들어가면서 의사소통을 한다. 뇌량이 절단되면 두 반구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양 뇌반구 간의 신경다발(뇌랑: corpus callosum)을 절단한 환자의 시각 인지실험에서 뇌분할 환자는 남자의 얼굴에 대해서는 말로 서술할 수 있지만, 여자의 얼굴에 대해서는 이미지만을 가리킬 수 있을 뿐이다. 좌반구는 언어적인 표현을 담당하고, 우반구는 시각적인 인식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가운데 뇌량이 끊어진 뇌분할 환자를 실험한 이 괴상한 할아주버니 그림을 ‘키메라’라고 부른다. 그리스어로 접목잡종이라 뜻이다. 키메라는 그러니까 한 이름, 두 얼굴이다. 참이슬도 한 이름, 두 얼굴이다.

뇌량의 량자는 교량할 때의 량자다. 나같이 두꺼비 때문에 가운데 다리가 부실해진 사람은 내가 무슨 술을 마셨는지 서술하기 위해서는 곰곰이 우뇌에서 이미지를 떠올려 이놈을 데리고 살살 다리를 건너가 왼쪽에 가서 말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놈들이 둘 다 먹물이라 어떤 놈을 다리를 건너가게 할지, 어떤 놈이 건너오는지 좌뇌와 우뇌가 모두 헛갈리는 것이다. 뇌의 기능별 각 부분은 동시 병렬적으로 작동하여 정보가 서로 결합하지만, 힘의 균형이 온전해야만 통합적으로 결합할 수가 있다(그린필드, 2004).

기호는 자의적(恣意的)이다. 소쉬르 식으로 말하자면, 나무라는 말은 실제 나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기호의 의미는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 의해 정의된다. 나무라는 기호의 의미는 돌이나 물과의 차이에 의해서 규정된다. 그리고 의미들을 조직해내는 객관적이고, 사회적 약속이 개인들의 언어 사용을 규정한다. 낱말 자체에는 본질적 의미가 없기 때문에 낱말의 의미는 언어체계 속에서 다른 낱말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 정의된다. 밤이라는 개념 없이 ‘낮’을 알 수는 없다. 달(月)과 물(水) 사이에는 존재하는 것이 없지만, 月요일과 水요일 사이에는 火요일이 존재하지 않은가. 막걸리와 맥주의 맥락에서 소주의 의미가 생기고, 처음처럼과의 맥락에 의해서 참이슬이 존재한다. 푸코에 의하면 ‘우리는 유사를 통해서 보며 차이를 통해 말한다’. 언어는 고정된 의미가 없고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순댓국집에서 소주를 달라고 하자 종업원이 ‘술은 이슬로(처음처럼에 대하여) 하시겠어요?’라고 처음처럼이 나오기 전에는 묻지도 않던 말을 물은 것이다. 이렇게 말이라는 게 고정되지 못하고 흐느적거린다. 말 자체는 사물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브랜드 명이라는 것도 애초에는 없던 관계와 맥락을 소비자에게 소비자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

참이슬 후레쉬의 이미지는 처음처럼의 이미지다. 전혀 다른 글씨체이긴 하지만 범주화 (Categorization)시킬 때는 먹물 캘리그라피다. 우리는 기억을 범주화 한다. 자극 정보들을 범주적 또는 주제 중심의 위계적 조직화를 통해 보다 상위 수준의 의미로 단순화 한다. 하위 수준의 정보들은 비교적 유사한 것이 많아서 서로 혼동과 간섭이 일어나는데 비해 상위 수준의 의미 정보는 유사한 것이 적어 간섭을 덜 받는다. 예를 들면 카나리아는 새이고, 새는 동물이다. 앵무새는 새이고, 새는 동물이다 이런 식이다. 카나리아는 노래를 잘하고, 털이 노랗고, 앵무새는 색색깔이고, 부리가 크고 하는 것은 하위수준의 정보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혼동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붓글씨가 흘림체인지 정자체인지 하는 것은 캘리그라피 수준에서 하는 것이지 소비자는 덩어리 짓기(chunking)를 해서 그냥 붓글씨로 보는 것이다.

불가능한, 이름과 그림 같이 보여주기

보여주기와 이름 붙이기, 바라보면서 읽기, 모방하기와 의미하기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폴 클레다. 그는 그림과 글자를 한 화면에 집어넣었다. 푸코는 조형적 재현과 언어적 지시를 분리한다. 이 난해한 그림의 해석에서 말과 그림 사이엔 공통의 공간, 즉 말이 형상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림이 어휘의 질서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마그리트는 소쉬르가 말하는 기호의 자의성을 말하기 위하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까. 말은 문이 될 수도 있고, 항아리는 새가 될 수도 있고.. 회화로써 이를 말하려고 했던 노력이 ‘꿈의 열쇠’를 그리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클레처럼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글자와 그림으로 이미지의 해체를 시도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미지와 텍스트, 둘은 서로 종속되지 않는다. 브랜드의 이름과 브랜드의 이미지도 서로 종속되지 않는다. 글자와 그림은 서로 포개지지 않는다. 따라서 텍스트가 이미지에 의해서 규제되거나 혹은 이미지가 텍스트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브랜드의 이름과 패키지의 이미지는 서로 간에 위계질서가 있어야 한다. FMCG에서는 텍스트가 이미지에 종속되어야 한다. 현대인은 정보의 90% 가까이를 시각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소주병의 색깔과 형태는 코드화되어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상품이 되어버린다. 그림처럼 한라산 생수나 쌀 보드카가 되어버린다. 소주에서 브랜드들 간 차이를 만들어 주는 것은 레이블의 그림뿐이다. 참이슬은 처음처럼의 먹물 캘리그라피에 대하여 청정한 대나무로서 상대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대나무 숯으로 네 번 걸러서 깨끗한, 참대나무 그림이 만들어내는 청정한 참이슬 이미지가 다른 소주와 차별적으로 브랜드 포지쇼닝에 기여하였다.

책임론, 장미의 배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은 빛깔과 향기에 맞는 이름을 불러야 된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이름은 존재를 말하고, 이름을 밝히는 행위는 곧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참이슬로 치면 전자는 브랜드 명이며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그 무엇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눈짓은 참이슬의 브랜드 포지쇼닝이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읽어보자.

“안녕” 여우가 말했다.
“넌 누구니? 참 이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여우야.”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퍼.”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길이 안 들었으니까.”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니?”
“모두를 잊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맞는다는 뜻이란다.” 여우가 대답했다.
“관계를 맺는다구?”
“응,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관계를 맺는 거야. 내게는 네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것이고. 네게도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거야.”
“하나 밖에 없는?”
“응, 그리고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난 네 걸음소리만 들어도 세상에 누구와도 다른 너라는 걸 알게 되지. 그리고 저기 저 밀밭이 보이니? 지금 내겐 아무 의미도 없지만 네 머리카락은 금발이니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나는 저 금빛 밀밭만 보면 나는 네가 생각날 거야. 그리고 밀밭에 이는 바람마저도 사랑하게 될 거야.”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나는 그냥 너를 곁눈질로 바라만 볼 거야. 아무 말도 하지 마. 하지만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앉아. 그러면 된다구.”

아버지가 마시는 술병 옆에서 나는 참을성이 많았다. 멀리 떨어져서 곁눈질로 진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마다 조금씩 가까이 가서 앉았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셔보았다. 브랜드로 치면 어린왕자에서 길들이기, 관계는 브랜딩 과정을 말하고 걸음소리, 밀밭, 일렁이는 바람만 봐도 금발과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생각나는 것은 브랜드의 시각적 포지쇼닝을 말한다. 사물의 존재의 의미는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계에 의해서 드러난다. 어린 왕자가 보여주고 있는 길들임을 통한 관계의 수립은 꽃이 말하고 있는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몸짓, 눈짓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다.
작별 인사를 할 때, 여우는 비밀을 하나 가르쳐 준다.
“네가 행성에서 길들였던 장미가 그다지도 소중해진 것은 그 장미를 위하여 잃어버린 수많은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고 있어.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디자인은 계산된 예술이다.

참이슬 디자인료가 억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술품 값이다. 물론 수백, 수 천 번 쓴 끝에 아트의 경지에서 그 글씨와 디자인이 탄생했을 것이다. 디자인과 아트가 다름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계산된 질서 속에서 아트를 행하는 일이 디자인이 아닐까. 나의 디자인의 정의다. ‘시장의 혼돈을 정리하는 것이 디자인이다’라고 디자인을 정의한 영국인이 있다.
청바지 사진은 청바지 광고가 아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이 디자인 한 로큰롤 그룹 롤링스톤스의 앨범 커버다. 진짜 지퍼가 달려 있다고 한다. 지퍼를 어서 내려주고 싶지 않은가. 지퍼를 내리면 한 겹 팬티가 보인다고 한다. 워홀은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를 이렇게 지워버렸다. 페인트 깡통 바닥에 못으로 구멍을 뚫고 마구잡이로 페인트를 흘리는 추상화의 최전방 잭슨 폴록도 미리 바닥에 수십 개의 격자 선을 미리 그어 놓았기 때문에 맑스의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우루주스 베얼리(Ursus Vehrli)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그림으로 정의한다. 고흐도 칸딘스키도 클레도 간단히 계산해버린다.

마그리트의 ‘강간’은 구두가 발을 삼키고, 발이 구두를 삼킨다. 나무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나뭇잎도 나무가 되어야 한다. 이미지는 이미지를 삼킨다. 서로가 서로를 열고 들어간다. 브랜드 라인 확장의 경우, 이미지가 이미지를 물고 들어가야 한다. 고래 사진과 같이 우리는 전체를 보고, 필요 시에 부분을 본다. 전체가 부분에 선행한다. 오징어는 고래를 삼키지 못한다. ‘오징어가 고래를 삼키’는 것은 텍스트이지 이미지가 아니다. 라캉(1977)에 의하면, 언어는 대상체들을 미래로 지연시킨다. 그래서 언어는 말해지는 순간, 사라지는 결핍이다. 푸코 역시, 읽기 시작하자마자 형태는 사라진다고 말한다. 남는 것은 이미지다. 이파리 한 개는 대나무를 삼키지 못하고, 물방울 한 개는 참이슬을 삼키지 못한다. 이것은 참이슬이 아니다.



참고문헌
김미선 옮김, 마르코 야코보니 (2009) 미러랑피플, 갤리온
이무열 옮김, 말콤 글래드웰 (2005), 블링크, 21세기북스
정병선 옮김, 수전 그린필드, 브렌인스토리, 지호출판사, 2004, PP 283-284.